본문 바로가기
슬로우라이프

뉴질랜드이민 느림의미학 적응기

by 그래니하우스 2024. 9. 3.
728x90
반응형

 

 

 

 

 

 

드디어 뉴질랜드에 작은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배로 짐을 보낸 후 도착하기까지 한 달 반 정도 걸렸는데, 그동안은 여전히 뜨내기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답니다. 짐을 컨테이너로 보낸 비용은 약 300만 원 정도였어요. 지금은 더 올랐겠죠?
짐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기쁨, 아마 이민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거예요.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컨테이너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어요. 이사를 준비하면서 쌓아놓은 짐들이 과연 무사히 뉴질랜드에 도착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어요.

 

 

 



컨테이너가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짐을 푸는 게 아니더라고요. 먼저 세관에서 모든 물품을 일일이 체크해야 한다고 했을 때, '설마 이렇게까지?' 싶었죠. 그런데 이게 진짜 현실이었어요. 세관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또 얼마나 복잡하던지요. 물품 목록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건 기본이었고, 하나하나 어떤 물건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오래된 건지까지 적어야 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컨테이너가 열렸을 때, 담당 정부 직원(MAF)이 나오더니 제출한 서류와 짐을 일일이 대조하기 시작했어요. 그냥 대충 보는 게 아니라, 박스 하나하나를 열어보면서 꼼꼼하게 체크하더라고요. 신발까지 뒤집어가면서 흙이 묻어있는지 확인하고, 나무로 된 가구는 해충이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검사했어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뉴질랜드가 왜 이렇게 꼼꼼한 나라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이 나라의 원칙이라는 걸 몸소 체험한 셈이었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검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도 이사를 몇 번 해봤지만, 이런 절차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뉴질랜드의 이런 꼼꼼함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철저함이 오히려 이 나라의 매력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느리고 철저하지만, 그만큼 신뢰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마지막으로 세관 직원이 모든 물품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짐을 풀 수 있었어요. 짐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뉴질랜드 생활이 이제야 제대로 시작되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이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남편이 드디어 제 끈질긴 압력에 굴복해서 랭귀지 스쿨에 등록했을 때,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함께 들었어요. 드디어 남편도 영어에 좀 더 익숙해지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이게 웬걸, 3개월이 지나자 남편이 하는 말,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거예요. "영어는 이제 완전히 마스터했어"라고 하면서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지만, 남편의 자신감에 잠시 속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믿은 제가 바보였죠.

사실 남편은 한국에서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하긴 했지만, 현지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랭귀지 스쿨을 졸업하자마자 영어 공부는 그만두고,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바다로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전생에 생선과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자다 깨면 남편이 옆자리에 없고, 이미 바다로 떠난 후였죠.

 

 

 



한국에 있을 때는 그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며 회사에 보내야 했던 남편이었는데, 뉴질랜드에서는 아침 해도 뜨기 전에 스스로 일어나 바다로 달려가더라고요. 이 배신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죠.

아침 식사 때쯤이면 집에 잠깐 나타나 얼굴을 디밀고는, 후다닥 밥을 먹고 다시 바다로 고고씽!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도 그날의 스케줄 중 하나일 뿐이었어요.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어김없이 또 바다에서 돌아와서는, 얼굴에 웃음 가득한 채로 "오늘도 대어를 낚았다!"고 자랑하죠.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여유로운 일상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이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도 학교에 가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어요. 뉴질랜드의 느리고 여유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도 천천히 뉴질랜드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낚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아들 하교 시간을 깜빡 잊어버린 거예요. 급히 차를 몰고 학교로 가던 중, 스피드 카메라에 딱 걸렸지 뭐예요. 첫 신고식으로 90달러의 벌금 고지서를 받았을 때, 남편의 표정은 정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낚시에만 정신이 팔려서 벌금까지 물게 됐구나" 하면서도, 다음 날 또 바다로 향하는 남편을 보며,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집 냉동실과 냉장고는 남편이 잡아 온 생선들로 터질 지경이었어요. 굴비처럼 염장해서 말려보기도 하고, 어묵도 만들어 먹고, 심지어는 생선 찌개까지 끓여서 먹었죠. 생선이 너무 많아져서 한동안은 생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질릴 정도였어요. 그래서 생선은 우리 집 식재료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 상태였죠.

남편이 그렇게 열심히 잡아온 생선이 바로 카와이(Kahawai)라는 종류였어요. 마오리들은 훈제로 즐겨 먹는다고 하던데, 백인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생선이었어요. 한국의 고등어와 맛이 비슷해서 우리에게는 제법 친숙했죠. 뉴질랜드에서 가장 흔하게 잡히는 생선 중 하나였는데, 남편이 하도 많이 잡아와서 그런지, 이 생선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예요. 그러니까, 우리 남편도 그 감소에 한몫 거든 것 같아요.

이렇게 매일 바다로 출근하는 남편 덕분에 뉴질랜드 생활은 생선과 함께였어요. 어느 날은 남편이 너무 많은 생선을 잡아와서, 냉장고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급히 염장을 해서 말려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생선 요리를 연구하면서도, 남편의 어부 놀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죠.

 

 

 

 

 

뉴질랜드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 중 하나는 바로 '느림의 미학'이었어요. 한국에서 살 때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갔고, 특히 서울에서는 뭐든지 신속하게 처리되는 것이 당연했죠. 그래서 처음 뉴질랜드에 와서 관공서나 레스토랑에 갔을 때는 그 느린 속도에 정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은행 업무를 보러 가면 번호표를 뽑고 몇 분 안에 순서가 오죠? 하지만 여기서는 번호표도 없고, 직원들이 여유롭게 웃으며 인사부터 건네요. 속으로 '빨리 좀 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곳 사람들은 마치 시간이 충분하다는 듯 여유롭게 일을 처리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답답해서 "이러다 나라 망하는 거 아니야?"라고 투덜대곤 했죠.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였어요. 한국에서는 주문을 하면 금세 음식이 나오는 데 비해, 여기서는 주문하고 나면 웨이터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웃으며 말하죠. 하지만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요. 특히 배고플 때는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어요. 음식을 기다리다 지쳐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서울에서는 빠른 음식 서비스에 익숙했는데, 이곳에서는 그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일상이더라고요.

 

 



어느 날은 길을 가다가 도로 공사 현장을 봤는데, 한국에서는 후다닥 해치울 일을 여기는 몇 주에 걸쳐 천천히 하더라고요. 공사 인부들도 퇴근 시간이 되면 일을 멈추고 가버려요. '이렇게 일을 하다가 언제 끝나려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죠. 한국에서는 건물 하나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은 편인데, 여기서는 건물 하나 짓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그 느린 속도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느림에 점점 적응하게 되었어요. 뉴질랜드 사람들은 이 느림 속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삶을 더 여유롭게 즐기는 것 같았어요.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고, 일을 천천히 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그 리듬에 맞춰가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도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아줌마로서, 이 느림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특히 중요한 일이나 급한 일을 처리할 때는 속이 타기도 하죠.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이 느림이 오히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어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살면서 배워가고 있는 중이에요.

다음 시간에는 뉴질랜드의 사회복지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한국과는 또 다른 점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함께 나눠볼게요. 뉴질랜드에서 느낀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




728x90
반응형